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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회


부산지회 창립 이전의 상황을 보면, 1905년엔 「신정 국문」을 상소한 지 석영은 부산 출신이다. 그는 일찍 부산에서재생 의원을 연 의사로서, 그 뒤 1896년에 동래 부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김 두봉, 최 현배, 이 극로, 이 윤재, 정 인섭, 이 은상, 안 호상, 김 법린, 허 웅 등이 모두 경남 출신이다. 『큰사전』 편찬에 엄청난 사재를 희사한 이 우식도 경남 출신이다. 그러한 전통으로 부산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말글 연구와 운동의 기운이 어느 지방보다도 세찼다. 그 뒤 1945년의 조국 광복으로 한국어 강습이 필요하게 되자, 그 해 가을에 홍 영식, 최 상학, 박 지홍 등이국어 동호회를 조직하고, 동래의 명륜국민학교 등지에서 한글맞춤법 강습회를 열었으니, 그것이 부산 최초의 말글운동 단체라 할 수 있다.


1945년 9월에는 수정동(오늘날의 부산일보사 자리)에 있는 유치원공생원을 본부로학생 문화 동지회가 결성되었는데, 정 신득, 나 진석, 이 형우, 이 동선, 김 소운, 최 수범, 박 지홍, 이 우영 들이 회원이었으며, 주로 한글맞춤법을 보급하고 민족정기를 되찾는 일에 몰두하다가 10월 중순에 학교가 재개되자 해산하였다. 그 무렵, 광복 전부터 밀양에서 한국어를 연구하고 있던 류 열이 조선어학회의 후원을 얻어 부산으로 진출하여, 장 삼식, 정 용수, 김 갑수, 정 신득, 우 신출, 남 지완 등과 손을 잡고한얼몯음을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한얼』 제1, 2호를 내어 가면서 동광동에 있는 수산 전문학교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한글운동을 펼쳤다. 초량에 있는 초량상업학교를 빌려배달학원이라는 이름의 야간 중학교를 운영하였는데, 그곳이 당시 부산 지역 말글운동의 산실이었다. 강사를 맡아 활동한 이는 홍 영식, 박 종우, 김 정한, 김 순봉, 류 백사, 이 정환, 박 지홍, 장 삼식, 장 갑상, 박 종우, 정 신득, 류 방산, 정 용수, 우 신출 등이었으며, 자체적으로 『중등 국문 독본』(1946.05.)을 엮어 교재로 썼다. 1945년 12월경에는 정식으로부산시 중등학교 국어교육 연구회가 창립되었는데, 부산 시내 중등학교 국어교사들이 거의 모두 참가하였다. 회장은 윤 인구이었고, 박 지홍이 국어교육에 관한 여러 과제들을 발표하였다. (1962년부터부산시 중등학교 국어교육 발전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는데, 연구 발표회와 아울러 『부산 교육』이라는 부산교위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1946년 12월에는 한얼몯음을 해산하고영남 국어학회로 개편하였다. 기관지 이름도 『국어』로 바꾸어, 제2호를 계승하여 제3호로 내었다. 류 백사, 최 현배, 방 종현, 이 극로, 김 다운, 홍 영식, 신 영철, 최 영해, 김 계원, 정 신득, 류 방산, 장 삼식, 이 철우, 박 지홍, 최 상학, 홍 남식, 염 주용 등이 회원이었으며, 전국적인 규모로 활동하였다.


1948년부터는 허 웅이 부산대학교 교수로 부임하게 되자, 1946년부터 통영 출신의 박 병환이 설립하여 운영해 오던 한글 무료 강습소인국학원을 이어받아국어연구회라 하고, 한국어의 학문적 보급을 꾀했다. 1949년부터는 국어국문학 연구 발표회를 가졌고 국어교사 재교육도 실시하였는데, 6․25 전쟁 때까지 이어졌다. 허 웅, 나 진석, 백 남철, 조 용만, 오 재희, 정 병욱, 박 지홍 들이 회원이었고, 서울의 이 병기, 김 윤경을 초빙하기도 했다. 그 밖에 1945년 12월(?) 무렵에한글문화보급회 부산지회가 창립되었는데, 그 뒤 배달학원의 강사들과 합류하여 한얼몯음에 흡수되었다. 1949년 8월 10일에는한글전용촉진회 경남지회가 탄생하였다. 부산시립 도서관에 본부를 두고 적극적인 한글전용 운동을 펼쳤는데, 그때 박 기출, 윤 인구, 우 신출, 김 계원, 추 월영, 허 웅, 정 재표, 김 정준, 문 치언, 김 정순, 백 남철, 정 신득, 오 창은, 나 진석, 정 용호, 최 정줄, 오 재혁, 박 지홍, 정 진업, 김 종수, 정 규명 등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6․25 전쟁으로 1951년에 중앙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지자 부산은 우리나라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젊은 국어국문 학도들이 1952년에국어국문학회를 창립하였는데, 영남 출신의 국어학도로 나 진석, 허 웅, 박 지홍, 정 신득, 박 태권, 이 주호, 김 계곤, 문 효근, 김 영신, 이 병선 등이 참여하였다. 환도 후에국어국문학회 부산지회로 남았으나, 한글전용과 한자혼용의 논쟁 속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던 한글전용 찬성론자들이 탈퇴함으로써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959년에는 한글학회 회원을 중심으로 하여경남 방언학회를 결성하였는데, 참여하여 활동한 이는 나 진석, 박 지홍, 정 신득, 김 계원, 김 영신, 이 주호, 김 영송 등이고, 『경상남도 도지(1963)』에 경남 방언을 수집․정리하여 발표하였다. 1963년 2월 16일에 특별히 국문법을 연구하기 위한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매달 최 현배의 『우리말본』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회원은 나 진석, 김 영송, 김 영신, 박 지홍, 신 덕화, 이 주호, 최 상학이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과 배경에 힘입어 1965년 1월 10일에 한글학회 본회원 4명이 지회 결성 준비모임을 열고, 11일에는 지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김 계원을 초대 지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창립총회는 1월 24일 오전 11시부터 3시간 동안, 대청동의 정음사 부산지사에서 가졌는데, 부산 및 경남에 거주하는 한글학회 회원 11명―김 계원, 정 신득, 나 진석, 박 지홍, 추 월영, 김 영송, 김 영신, 박 태권, 신 덕화, 이 주호, 안 장현―이 모두 참석하고, 그 밖에 6명이 참석하였다. 회칙을 정하고, 간사와 부원을 정하였는데, 그 동안 여러 차례 임원이 바뀌었다.


부산지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1965년 1월에 창립한 뒤 바로 3월부터 월례 연구 발표회를 꾸준히 열고 있으며, 1968년 10월에는 경북지회와 함께한글학회 부산‧경북지구 합동 연구 발표회를 시작하였다. 1973년에 마산지회와 김해지회가 결성되고 여기에 합류함으로써한글학회 영남지구 합동 연구 발표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9년까지 꾸준히 계속하여 20회를 열었다. 그 뒤 5년 동안 끊어졌다가 1995년에 다시 이었는데, 1996년부터는 전남지회와 전북지회도 참여하는한글학회 영남·호남 합동 연구 발표회로 확대하여 치르고 있으며, 지회 합동 발표회 외에 19983년 4월 2일에는 한국언어학회, 대한음성학회와 공동으로 부산대학교 어학연구소 시청각실에서 언어학 연구 발표회를 가졌다. 1975년 4월에 젊은 지회원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국어학 연구회가 생겨났고, 그것을 계기로국문학 분과,국어교육 분과까지 만들어져, 1980년까지 분과별로 연구 발표 모임, 고전 읽기 모임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1년과 1993년에는 지회원이 참가하는, 1박 2일의 공동 토론회를 가졌다. 제1회는 1991년 1월 30~31일에 송정의 동성리서치에서 모였으며, 맞춤법과 표준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제2회는 1993년 8월 16~17일에 같은 장소에서 열었는데, 『한글학회 부산지회 30년사』 편찬과 대학생 학술논문 발표 대회 개최에 관하여 의논한 다음에, 김 영일의 「알타이어에 나타나는말(馬)의 어형」이라는 특강을 듣는 것으로 토론회를 대신하였다.


1980년 9월에 제13대 김용태 지회장이 일할 때 『부산 한글소식』을 창간하고, 1982년 5월에 논문집 『부산 한글』을 창간하여 발행하고 있으며, 1995년 6월에는 부산지회 30년의 발자취를 정리하여 『한글학회 부산지회 30년사』를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그밖에도 말글 강연회, 말글 관련 건의서 제출과 성명서 발표, 말 다듬기 등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해마다 한글날에는 부산광역시와 함께 한글날 경축식을 주관하는가 하면 대학생 학술 논문 발표 대회, 1987년부터삼광한글 학술상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전북지회


광복 직후 전주․이리․군산의 세 도시는 전북에서는 제일 먼저 겨레 말글 연구의 바람이 일었다. 1945년에 이 병기의 노력으로 한글 강습회를 열게 되니 많은 교육자와 언론인들이 참여하였다. 그 해 11월에는 전주 가톨릭청년회에서, 이듬해 12월에는 전라북도 학무과에서 국어․국사 강습회를 열었으니 전라북도의 한글운동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49년 한글 반포 503주년은 전북의 한글운동에 전환점이 되었다. 한글학회의 외곽 단체로서한글전용촉진회 전라북도지회가 결성(1949. 08. 13.)되었으며, 그로 인해 본격적인 조직적 운동의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라북도의 한글운동은 6‧25 전쟁 중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1‧4 후퇴로 서울의 학자들이 전북 지역으로 유입되어전시 연합대학이 세워졌으며, 거기서 중등국어과 교사 강습회를 여는 등, 계몽의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한 움직임은 1952년 전북대학교의 설립으로 더욱 가속화되어 이 동욱, 정 인승, 이 병기를 중심으로 그 심도를 더하여 갔다. 각종 행사와 강연회가 활발히 개최되었으며, 한글맞춤법 간소화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대로 연구도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한 전통과 한글운동에 대한 굳은 사명감은 1965년 한글학회 이사장 최 현배의 전주 방문을 계기로 한글학회 전북지회의 결성을 이루게 하였다.


전북지회는 1965년 결성 이후 얼마 동안의 휴식 기간을 가졌지만 꾸준히 연구 발표회를 열었고, 1985년 12월에 『한글문화』 발행하는 등 우리 말글 운동을 실천적으로 실행해 오고 있다.




대구지회


대구지회는 1965년 겨레 말글을 사랑하는 몇몇 분들이 모여 지회 결성을 의논한 끝에 1966년 5월 27일 대구 원화여고 음악실에서 경북지회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써 설립되었다. 당시 뜻을 같이하여 참여한 사람은 대구시 일원의 중등학교 국어 교사 20여 명이었다. 그날 오전에는 최 현배 이사장과 허 웅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지회 사무실로 쓸일심사에한글학회 경북지회라는 현판을 달았고, 창립총회는 오후 4시에 시작하였는데, 지회장으로 여 영택, 총무 이사로 정 휘창, 연구 이사로 채 희문, 출판 이사로 황 병팔을 각각 선출하였다. 그들은 1975년 3월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같은 직책으로 지회 발전을 위하여 힘썼다.


창립 회원은 곽 두식(능인중고), 윤 운강(계성고), 김 시헌(제일여중), 이 석우(침산국교), 김 을수(경북여고), 이 동희(계성고), 김 진기(대륜고), 이 현규(영남고), 김 형수(효성여대), 정 대화(도교위 중등과), 박 인술(원화여고), 정 문교(영천여고), 송 숙이(경주 황성국교), 정 휘창(원화여고), 신 현석(문경종고), 채 희문(경북사대부고), 엄 재현(대성국교), 허 영수(신명여고), 여 영택(경북고), 황 병팔(경북공고) 등 20명이었다. 절대 다수가 중등학교 국어 교사였다. 회원이 되는 자격은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한글학회의 정신과 전통을 존중하고 그 주장과 회칙을 승인한 사람으로서, 회원 두 사람 이상의 추천으로 이사회의 심사를 거쳐 입회를 허락하였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대학 교수가 많이 입회함으로써 지회는 점차 학술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회원 수도 대폭 늘어났다. 지금은 약 100명에 이르며, 퇴임 교수, 현직 대학 교수 및 강사, 중등학교 교사,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원 조직은 1966년 창립 당시, 지회장과 총무 이사, 연구 이사, 편집 이사, 사업 이사, 섭외 이사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감사를 두었다. 그 후 1975년부터 10년간은 총무 이사와 연구 이사만으로 지회를 운영했으며, 1984년부터 4년간은 섭외 이사를 공석으로 두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는 사업 이사를 뺀 채로 4명의 이사로써 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회장과 이사, 감사는 정기총회에서 선출하고, 임기는 1년으로 되어 있지만 통상 2년씩 맡아 오고 있다.


1982년 3월 19일 정기총회에서경북지회라는 이름을대구지회로 바꾸었다.


대구지회는 1968년 논문 발표회를 시작으로 1993년부터는 월례 발표회로 굳어져 오늘까지 꾸준히 연구 발표회를 열고 있다. 이와 함께 고전 윤독회를 1990년부터 시작하였다. 대구지회와 부산지회는 지역적으로도 근접해 있고 학문적으로도 영남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접촉이 잦았다. 그러므로 두 지회가 공동으로 학술 발표회를 가져 하나의 주제 아래 토론을 벌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1968년 10월 9일 한글날에 경주 계림국민학교에서 경북지회 주최로한글학회 부산‧경북지구 합동 연구 발표회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73년에 마산지회와 김해지회가 결성되고 여기에 합류함으로써한글학회 영남지구 합동 연구 발표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9년까지 꾸준히 계속하여 20회를 열었다. 그 뒤 5년 동안 끊어졌다가 1995년에 다시 이었는데, 1996년부터는 전남지회와 전북지회도 참여하는한글학회 영남·호남 합동 연구 발표회로 확대하여 치렀다.


1979년 10월에 논문집 『한글 경북』을 창간하였으며, 대학생 논문 발표 대회, 한글날 기념 행사, 유공자 추천 및 표창, 한말글운동 학생회 지도․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대전지회


1968년 봄에 황 희영(대전대 교수), 유 동삼(대전중 교사)을 비롯한 학계 및 교육계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한글학회 대전지회 창립을 의논하였고, 1968년 9월 28일에 지회 결성 준비 모임을 가진 뒤 10월 8일에 대전지회를 창립했다. 창립 회원은 황 희영, 박 승하, 도 수희, 송 백헌, 염 석운, 박 동규, 유 동삼, 김 용경, 김 성수, 지 헌영, 유 예근, 최 송춘의 14명이었다.


새소식』 보급, 한말글문화협회 지부와 한말글사랑 한밭모임은 물론 대학생 한말글 모임과의 적극적인 연합 활동과 격려를 하고 있다.




김해지회


김해지회는 1974년 10월 12일, 김해군교육청 회의실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참가한 회원은 김 계원, 이 삼영, 정 의상, 김 상욱, 윤 주희, 최 정희, 이 규상, 박 선기, 배 혜숙, 손 진천, 차 종균, 하 치근, 목 청수, 김 성홍, 김 중곤, 김 종례, 오 재환, 김 찬은, 김 균태, 박 태승, 문 의식 등 21명이었다.


김해지회의 초대 임원은 지회장을 맡은 김 계원을 비롯하여, 총무 간사에 김 상욱, 연구 간사에 김 중곤, 보급 간사에 문 의식이 임명되었으며, 임기는 1974년 10월 12일부터 1978년 6월 2일까지였다. 지회 창립 기념으로 김 계원이 “한글의 우수성”을 발표한 이래, 2006년까지 35회에 걸쳐 연구 발표회를 열었으며, 1968년 10월부터 부산지회와 경북지회가 시작한한글학회 부산‧경북지구 합동 연구 발표회에, 김해지회는 1974년 창립과 동시에 합류하였고, 해마다 4월 말에 펼치는 김해 가락문화제 행사 때에 관내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는 등 말글운동에 힘썼으나 지금은 지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지회


한글학회 인천지회가 설립될 때의 인천은, 문화 시설이 부족하고 서울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였다. 대학은 이공계인 인하공과대학(오늘날의 인하대학교)과 2년제인 인천교육대학(오늘날의 경인교육대학교)이 있을 뿐이고, 큰 출판사나 인쇄소도 없었으며, 변변한 공연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영향으로 한국어학을 전공한 학자도 드물었고, 한국어에 관심을 갖는 교사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어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인천으로 직장을 옮겨 오면서 한글학회 인천지회를 설립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갔다. 한글학회에서 일을 맡아 보았던 김 원표(작고)가 인하공과대학으로 왔고, 한글학회에서 사전 편찬 일을 오래 맡아 본 이 강로가 인천교육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보성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있던 김 계곤이 인천교육대학으로 왔다. 그리고 인천에서 외롭게 한글운동에 앞장서 왔던 조 용란이 박문여고에서 인하공업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강로와 김 계곤은 인천교육대학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될 교육대학 학생들과 승진을 위해 연수를 받는 교사들에게 겨레 말글에 대한 열정적인 강의를 하여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조 용란은 인천에서 발간하는 신문과 잡지에 많은 글을 발표하여 불모지였던 인천에 한글의 얼을 심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고, 최 민(인천외솔회 회장)은 제물포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격려를 하여 주었다.


이들은 여러 차례 창립을 논의한 끝에 1974년 10월 26일 오후 3시에 인천교육대학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창립총회에는 김 계곤, 조 용란, 최 민, 한 인희, 김 진규 등이 참석하였다.


인천지회는 초창기에 1년에 한 번 연구 발표회를 가졌고, 1981년부터는 3회, 1988년부터는 4회, 2002년부터는 연 2회를 열면서 발표자를 늘리고 연구 발표회 질을 높였다. 간행물로는 『한글의 벗』, 『인천 한글』, 『인천 한글문화』가 있으며, 한글 백일장, 한글서예 전시회 등의 행사와 한글날 경축식을 인천광역시와 함께 해마다 열고 있다.




경남지회


마산지회가 결성되기 전에 마산에는 신 상철(경남대 교수), 김 홍곤(경남대 병설 공전대 교수), 김 교한(마산중 교감) 등, 3명의 한글학회 회원이 있었다. 김해지회의 김 계원이 김 교한을 통해 마산지회의 결성을 종용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은 마산외솔회가 창립된 1975년 12월 20일이었다. 창립 기념 강연회 연사로 참석한 허 웅 이사장과 마산외솔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신 상철 사이에 지회 결성에 따른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준비에 따른 일은 주로 김 교한이 맡았다.


김 홍곤, 목 청수, 공 정환, 문 창호, 진 재수, 조 상덕, 김 한료, 박 규식, 김 종택, 신 호향, 박 성부, 최 현득, 김 성환, 서 수원, 김 형춘 들이 수림회관에서 예비 총회를 가졌다. 김 교한의 경과 보고에 이어 회칙을 심의․통과시키고, 전형 위원들이 임원을 선출하였다.


16일의 창립총회에는 회원 이외에 한글학회 이사장 허 웅, 『한글 새소식』 주간 성 원경, 부산지회장 정 신득, 부산대 교수 박 지홍 등이 내빈으로 참석하였다. 지회장 신 상철의 인사말에 이어서 허 웅 이사장의 치사, 부산지회장 정 신득의 축사가 뒤따르고, 성 원경 주간의 업무 협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15년 동안마산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가 1991년에경남지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경남지회는 1978년 9월부터 연구 발표회를 가졌으며, 1980년부터는 한글학회 지회 합동 발표회에 참여하였다. 1977년부터는 마산외솔회와 공동으로경상남도 교육감기 따기 국어순화 경시 대회를 열고 있는데 이 행사는 경남지회만의 독특한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전남지회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 지역의 학계 인사들이한글학회 전남지회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아, 1979년 9월 30일에 지회를 창립하고 홍 순탁이 초대 지회장을 맡았다. 그 뒤 1981년 4월 3일에 총회를 열어 지회를 개편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4년 무렵부터 이름을광주․전남지회로 바꾸었다.


1981년부터 연구 발표회를 시작하였으며, 1996년부터 전북지회와 함께 지회 합동 발표회에 참여하여 그 뒤한글학회 영남․호남 합동 연구 발표회로 확대되었다.


광주․전남지회는 1998년에 두 차례의대학생을 위한 공개 강좌를 열고 국어 생활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4월 16일에는 조 미경이 「중․고등학생의 언어․문자 생활의 실패와 문법 교육」이란 주제로, 9월 8일에는 서 상준이 「한자 쓰기 주장의 허구」를 주제로 강연하였다.


1999년 3월 1일에는우리 말글문화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여 길거리 계몽 운동을 펼쳤으며, 10월 9일 한글날에도 기념 강연을 통하여 한글전용의 필요성을 널리 홍보하였다.


그 밖에도 2000년 11월 18일에 논문 바로 쓰기 세미나(강사: 서 상준), 12월 2일에는 우리말 순화 세미나(강사: 서 상준) 등을 열어 광주․전남 지역에 국어 사랑 정신을 전파하였다.




울산지회


1987년 10월, 한글학회에 남다른 정성과 열의를 가진 김 용태가 울산에 신설된 성신고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초빙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울산대학교 양 명학 교수를 비롯하여 말글운동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이 접촉하여 한글학회 지회를 만들기로 뜻을 모으고, 1988년 5월 24일에 발기회를 가졌다. 그 후 몇 달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본회 허 웅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12월 7일에 창립총회를 열어 지회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게 되었다.


창립 당시의 지회원은 중등학교 교사 중심으로 50명이었으며, 창립총회를 기념하여 그날 김 용태 지회장이 「울산의 이름 연구」를 주제로 제1회 연구 발표를 하였다.


울산지회는 해마다 한글날에, 선생의 모교인 병영초등학교에 있는 최 현배 선생 흉상에 꽃바치기 행사를 가지는 한편, 회원들이 지역 방송국에 출연하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펼쳐 왔다. 또 처용예술제 때마다 울산예총과 함께 초청 강연회를 열어 말글 사랑의 정신을 알리고 있다.




진주지회


진주는 교육 도시이고 문화 도시이다. 경상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진주산업대학교 등, 국립 대학 셋을 포함하여 대학이 일곱이나 있고, 경상남도의 초등․중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 중에도 진주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많다. 그러한 배경은 자연스레 오늘날의 한국어 현실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국어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고, 그렇게 하려면 한글학회 진주지회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와 같은 인식이 확산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1999년 3월 15일 교수 7명―옥 치곤, 김 수업, 권 정호, 김 용석, 조 규태, 황 병순, 박 정수―이 한자리에 모여 한글학회 진주지회를 창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어 3월 18일 창립 취지문을 한국어 애호가들에게 보내고, 3월 27일 창립총회 겸 학술 발표회를 개최하면서 진주지회가 발족하게 되었다.


진주지회는 창립 이후 해마다 3~6회의 연구 발표회를 꾸준히 이어 오고 있으며, 1999년부터는 학술 강연회를, 2001년부터는 본회에서 실시하고 있는아름다운 우리말 가게이름 선정 행사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충남․세종지회


공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학계 인사들이 한글학회 충남지회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아, 마침내 2007년 4월 28일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사무실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그로써 충청남도에 대전지회와는 별도로 지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창립 회원은 강 명순(나사렛대), 강 병륜(공주교대), 강 헌규(공주대), 강 흥구(공주대), 김 기영(충남여고), 김 성수(공주대), 김 정헌(광남고), 김 진규(공주대), 김 홍석(천안중앙고), 박 석문(백석대), 박 휴버트(공주대), 이 성규(단국대), 조 용림(공주대), 조 재훈(공주대) 등이었다.


한글학회 본회에서는 충남지회의 창립을 기념하여 2007년 세종날 기념 전국 학술 대회를 공주에서 치르기로 하고 그 시행을 충남지회에 맡겼으며, 충남지회에서는 창립하자마자 처음으로 맡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었고 그 이후 두 차례의 지회 연구 발표회를 열고 있으며, 해마다 『충남 한글』을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