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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1949년
글쓴이: 두루지기
읽음: 1281
올린 시간: 2015-06-10 10:41:51
1940. 03. 03. 조선총독부로부터 조선어사전(나중의 『조선말 큰사전』)의 출판을 허락받음.
06. 25.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일본어음 표기법」, 「조선어음 라마자 표기법」, 「조선어음 만국음성기호 표기법」을 확정·공표함.
11. 01. 새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정통 9월 상한"이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한글날의 날짜를 10월 9일로 고쳐 발표함.
10. 20. 『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펴냄.
12. 01. 『한글』 제82호를 펴냄.
1941. 01. 15. 위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비롯한 4개의 표기법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으로 펴냄.
1942. 01. 01. 『한글』 제92호를 펴냄.
봄. 『조선말 큰사전』 활자 조판을 시작함.
05. 01. 『한글』 제93호를 펴냄.
10. 01. ‘조선어학회 수난’이 시작됨. 학회의 임원과 중요 회원이 모두 구속되어 함경남도 함흥과 홍원으로 붙잡혀 가고, 학회의 모든 일이 중단됨.
1943. 12. 08. 이 윤재 선생이 함흥감옥에서 별세함.
1944. 02. 22. 한 징 선생이 함흥감옥에서 별세함.
1945. 08. 18. 광복과 더불어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고생하던 회원이 풀려나 서울로 돌아옴.
08. 19. 임원과 직원이 모여 조선어학회 재건 문제를 의논함.
08. 25. 긴급 임시총회를 열어 이 극로, 최 현배, 김 병제, 이 희승, 정 인승, 김 윤경을 간사로 뽑아 학회 조직을 정비함(간사장: 이 극로). "국어교본 편찬 위원회"를 구성함.
09. 08. 조선어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찾음.
09. 10. 서울 청진동 188번지로 학회 사무실(청진동 회관)을 옮김.
09. 11.
~ 24.
제1회 "국어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 개최. 사범부 659명 수료.
10. 09. 오전 10시 반부터 천도교당에서 499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이어서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옥사한 이 윤재 선생과 한 징 선생 추도식을 가짐. 그리고 거리행진을 벌임.
10.      『한글 첫걸음』을 편찬하여 미국 군정청 학무국에 무상으로 넘겨 줌.
11.     
~ 1947. 01.     
『초등국어 교본』 상··하, 『중등국어 교본』 상··하, 『초등 공민』 1·2, 3·4, 5·6, 『중등 공민』 1·2, 3·4 등 11종의 교과서를 편찬하여 미국 군정청 학무국에 무상으로 넘겨 줌.
1946. 01. 09.
~ 18.
제3회 "국어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 개최. 132명 수료.
02. 03.
03. 10.
연구 발표회를 엶. 임시총회를 열어 임원의 명칭 "간사(장)"를 "이사(장)"로 바꾸는 등, 회칙을 고치고, 장 지영, 이 극로, 최 현배, 이 희승, 김 병제, 정 인승, 김 윤경을 이사로 뽑음(이사장: 장 지영).
02. 12. 조선어학회 부설 기구로 "한글사"를 설립함.
04. 01. 4년 동안 중단되었던 『한글』을 되살려 제94호를 펴냄.
04. 06. 이 윤재 선생 묘비(경기도 광주군 방이리)를 세움.
10. 09. 『훈민정음』 원본(해례본) 영인하여 펴냄. 덕수궁에서 500돌 한글날 기념식을 성대히 벌임. 500돌 한글날 기념 강연회를 엶.
10. 16.
~ 31.
500돌 한글날 기념으로 제2회 조선어학 도서 전람회를 엶.
12. 26. 학회 창립 ‘옛25돌’ 기념식을 가짐.
1947. 03. 20. 『한글』 제99호를 펴냄.
10. 09.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을 펴냄. 천도교당에서 501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11. 09.
~ 12. 28.
"사범부 3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를 통하여 국어과 지도자 배출.
12. 14. 연구 발표회를 엶.
1948. 01. 11.
02. 08.
03. 14.
05. 16.
06. 14.
07. 14.
10. 16.
12. 12.
월례 연구 발표회를 엶.
02. 29. 『한글』 제103호를 펴냄.
04. 10.
(음력)
"세종날"을 제정하고, 숙명여자중학교 강당에서 551돌 세종날 기념식을 함.
07. 18. 국회에 ‘한글로 된 헌법을 정본으로 삼기’로 한 것에 대한 감사문 보냄.
07. 24. "한글전용법 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 문교·후생 위원회에 건의문 제출.
08. 08.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설립 인가를 문교부로부터 받음.
08. 28. 서무부 이사 이 극로의 사표를 수리함.
10. 01.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제1회 입학식을 가짐.
10. 09. 숙명여중 강당에서 502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 한글판을 펴냄(제235판).
1949. 01. 09.
11. 27.
연구 발표회를 엶.
01. 08. 『한글』 제105호를 펴냄.
03. 24. "재단법인 한글집"의 설립을 허가받음.
05. 05. 『조선말 큰사전』 제2권을 펴냄.
05. 15. 552돌 세종날 기념식을 가짐.
06. 04.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이 됨(대통령령 제124호).
06. 12. "한글전용촉진회"를 만듦.
09. 01.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제2회 입학식을 가짐.
09. 25. 정기총회에서 임원을 개선함(이사장: 최 현배).
10. 02. 정기총회를 속개하여 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꿈.
10. 09. 부민관(오늘날의 세종문화회관)에서 503돌 한글날 기념식을 기짐. 이 승만 대통령이 ‘한글맞춤법 간소화’를 언급함. 그로써 ‘한글맞춤법 간소화 파동’이 촉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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